총 두 권을 반나절 동안 읽었다. 두껍지만 단숨에 읽힌다.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집중해서 읽었는데 솔직히 첫 감상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거다. 세계를 묘사하는 아이콘들은 하루키의 익숙한 그것들이나 <해변의 카프카> 때처럼 단번에 뚜렷한 감상이 떠오르지 않는 책이다.
극 중 묘사와는 상관 없이 긴 생머리의 후카에리는 <혼>의 단발머리 임주은을 생각하며 읽었고 아오마메는 키 큰 후카츠 에리와 코유키 두 명이 섞인 채로 떠올랐다. 덴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연상이 되지 않아 억지로 재커리 퀸토 - 정확히 말하면 덩치 크고 재커리를 닮은 동양인 - 를 떠올렸더니 수월하게 읽혔다.
기억에 남는 문장 몇 개를 기록차 아래에 옮겨둔다. 스포일러가 될 만 한지는 모르겠다.
책 리뷰는 나중에.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양윤옥 옮김, 문학 동네.
하지만 개인적으로 보면 소탈하고 총명한 여성이었다. 그리고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일단 마음을 정하면 그것을 관철한다.
1권 174 쬭.
10월 6일에는 이집트에서 사다트 대통령이 이슬람 과격파 테러리스트에게 암살되었다. 아오마메는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다. 사다트 대통령이 새삼 딱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사다트 대통령의 벗어진 머리가 꽤 마음에 들었고, 종교 원리주의자들에게 대해서는 일관되게 강한 혐오감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의 편협한 세계관이나 잘난 척하는 우월감이나 타인에 대한 무신경한 강요는 생각만 해도 분노가 치밀었다.
1권 224 쪽.
하지만 덴고는 마음속으로 그녀를 가엾어했다. 쉬는 날에 어머니에게 이끌려 이 집 저 집 현관벨을 누르고 다녀야 한다는 특이한 공통점도 있었다. 선교활동과 수금업무라는 차이는 있지만 그런 역할을 강요당하는 것이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히는지, 덴고는 잘 알고 있었다. 일요일에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마음껏 뛰어놀아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을 어르고 달래며 수금을 하거나 무서운 세상의 종말을 선전하고 다니거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 건 - 만일 그럴 필요가 있다면 그렇다는 것이지만 - 어른들이 하면 된다.
1권 325쪽-326쪽.
"단 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인생에는 구원이 있어. 그 사람과 함께하지 못한다 해도."
1권 408쪽.
(전략) "많은 사람들은 감수성이나 영혼의 풍성함과는 아무 인연이 없는 세계에서 밑바닥 삶을 살아야 했어요. 도시의 길거리는 몸이 성치 못한 사람들과 걸인과 범죄자로 넘쳐났구요. 감회를 품고 달을 바라보고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감동하고 다울런드의 아름다운 음악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건 아마 극히 일부의 사람들뿐이었겠죠."
1권 456쪽.
(전략) "약하기 때문에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찾아 먹잇감으로 삼지 않고서는 배기지를 못하는 것이지요."
1권 463쪽.
"그러니까......" 하고 말했지만 그다음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덴고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후카에리와 대화할 때면 이따금 이렇게 된다. 자신이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를 했는지, 문득 흐름을 잃어버린다. 갑작스레 강한 바람이 불어와 연주하던 악보를 날려버리듯이.
1권 505쪽.
후카에리는 오른손을 내밀어 가만히 위로하듯이 덴고의 왼손을 잡았다.
"당신은 잘 몰라요." 그녀는 말했다.
"이를 테면 어떤 것을?"
"우리는 하나가 되었어요."
"하나가 되었다고?" 덴고는 놀라서 물었다.
"책을 함께 썼어요."
덴고는 손바닥에 후카에리의 손가락 힘을 느꼈다. 강하지는 않지만 균일하고 확실한 힘이었다.
"그래. 우리는 <공기 번데기>를 함께 썼어. 호랑이에게 잡아먹힐 때도 함께인 거야."
"호랑이는 안 나와요." 후카에리는 드물게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1권 505-506쪽.
어딘가에 살아있을 터인 어머니와 진짜 아버지라는 가설적 존재를 자신 속에 설정하면서, 숨막히는 한정된 인생에 새로운 문을 달려고 한 것이다.
1권 583쪽.
"역사 속의 대량학살하고 똑같아."
"대량학살?"
"저지른 쪽은 적당한 이론을 달아 행위를 합리화할 수도 있고 잊어버릴 수도 있어. 보고 싶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릴 수도 있지. 하지만 당한 쪽은 잊지 못해. 눈을 돌리지도 못해. 기억은 부모에게서 자식에게로 대대로 이어지지. 세계라는 건 말이지, 아오마메 씨. 하나의 기억과 그 반대편의 기억의 끝없는 싸움이야."
1권 622쪽-6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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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가 울고, 여름 구름이 흘러가고, 다마루의 가죽구두에는 얼룩 한 점 없다. 하지만 아오마메에게는 그것이 왠지 신선한 일처럼 여겨졌다. 세계가 이렇듯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2권 28쪽.
"체호프가 말했어." 다마루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이야기 속에 권총이 나왔다면 그건 반드시 발사되어야만 한다,고."
"무슨 뜻이죠?"
다마루는 아오마메를 정면으로 마주하듯이 서서 말했다. 그가 아주 조금 몇 센티미터쯤 키가 컸다.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끌어들이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아오마메는 원피스 소매를 바로잡고 숄더백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당신은 그걸 걱정하는 거군요. 만일 권총이 등장한다면 그건 반드시 어딘가에서 발포되는 결과를 낳고 말 거라고."
"체호프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래."
"그래서 가능하다면 내게 권총을 건네주고 싶지 않은 거고."
"위험하기도 하고 불법이기도 해. 게다가 체호프는 믿을 수 있는 작가야."
"하지만 이건 이야기가 아니에요. 현실세계의 일이지."
다마루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하고 아오마메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했다. 그러고는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그걸 누가 알지?"
2권 36쪽.
그뒤 오랫동안 덴고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동의 결여를 후회했다.
2권 104쪽.
(전략)"그건 내게는 소중한 풍경 중 하나야. 항상 내게 뭔가를 가르쳐줘. 혹은 뭔가를 가르쳐주려고 해.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필요해. 말로는 설명이 잘 안되지만, 의미를 가진 그런 풍경. 우리는 그 뭔가에 제대로 설명을 달기 위해 살아가는 그런 면이 있어. 난 그렇게 생각해."
"그게 우리가 살아가기 위한 근거 같은 게 된다는 얘기인가요?"
"아마도."
"내게도 그런 풍경이 있어요."
"그걸 소중히 간직하는게 좋아."
"소중히 간직할게요."
2권 4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