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여고생들 중 소위 공부 조금 잘 하는, 내 주변 애들은 다 전람회를 좋아했었다. 비꼬거나,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냥 사실이 그랬다. (마치 방송반 애들이 줄창 유키 구라모토를 틀어주는 것과 비슷한 느낌?)
난 공부를 그만큼 잘 못 해서인지 아니면 당시 영화 음악만 듣고 다녀서인지 전람회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마중 가던 길> 이라는 노래만큼은 가슴이 먹먹하도록 좋아했다.
참 짧은 가사에 단순한 곡인데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팠다. 서동욱의 목소리도 담백하게 좋았고.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한참이나 어렸을 때의 이야기.
20대 중반에 이 노래가 또 일상의 한 부분을 표현하는 키워드로 떠오를 때가 있었다.
널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지 아무도 모르게
낯익은 가로수 아름드리 나무는 푸른데
날 스쳐 가는데 가을바람은 예전 그 모습으로
늘 따뜻한 웃음 날 지켜주던 네 모습은
이제는 허물어져 아른거리는 기억 속을 더듬어도
난 생각이 나질 않아 그저 차가운 웃음만이 쌓여갈뿐
난 이제 잊혀 지겠지
설 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 노래.
오전에 우연히 듣게 되고 슥슥 곁을 지나간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내 빈약한 기억에는 그저 밥 먹은 게 제일 생각이 많이 나는구나.
서동욱의 목소리는 듣지 않으면 그냥, 생각도 나지 않지만 밥은 매일 매끼니 먹으니.
아, 이 노래는 다시 들어도 좋지만 일부러 찾아 듣지는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