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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music

무라카미 하루키 -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정말 말도 안 되는 표현이지만, 엄청나게 주관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하루키의 신간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를 샀다. 기복이 적긴 하지만 말도 안 되는 편집본도 나오는 마당에, 거의 모든 하루키 책을 사는 나로서는 이 책이 아주 좋았다. 제목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지만 공부를 하는 사람에게나, 아니면 거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 여기에는 문장 몇 개만 백업해둔다.




소설가는 많은 경우, 자신의 의식 속에 있는 것을 '스토리'라는 형태로 치환해서 표현하려고 합니다. 원래 있었던 형태와 거기서 생겨난 새로운 형태 사이의 '낙차'를 통해서, 그 낙차의 다이너미즘을 사다리처럼 이용해서 뭔가를 말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건 상당히 멀리 에둘러 가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입니다. - 20p


소설을 쓴다는 것은 아무튼 효율성이 떨어지는 작업입니다. (중략) 극단적으로 말하면 '소설가란 불필요한 것을 일부러 필요로 하는 인종'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 23p


하지만 소설가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바로 그런 불필요한 면, 멀리 에둘러 가는 점에 진실, 진리가 잔뜩 잠재되어 있다, 라는 것입니다. 어쩐지 강변을 늘어놓는 것 같지만 소설가는 대체로 그렇게 믿고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 24p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소설을 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몹시 '둔해빠진' 작업입니다. 거기에 스마트한 요소는 거의 눈에 띄지 않습니다 혼자 방에 틀어박혀 '이것도 아니네, 저것도 아니네'하고 오로지 문장을 주물럭거립니다. 책상 앞에서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며 하루 종일 단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조금 올려본들 그것에 대해 누군가 박수를 쳐주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잘했어, 잘했어" 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도 아닙니다. 혼자 납득하고 혼자 입 꾹 다물고 고개나 끄덕일 뿐입니다. 책이 나왔을 때, 그 한 줄의 문장적 정밀도를 주목해주는 사람이라고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바로 그런 작업입니다. 엄청 손은 많이 가면서 한없이 음침한 일인 것입니다. (중략) 그런 작업이 원래 성품에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혹은 그게 그리 고생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면 도저히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 24-25p


그런데 마음먹고 결단을 내려 새로운 가능성을 추구했던 것이 내 경우에는 좋은 결과를 낳았던 듯 합니다.  유럽 체재 중에 썼던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소설이 어쩌다 (예상 밖으로) 잘 팔리고 생활이 안정되면서 장기적으로 오랜 기간 소설을 쓰기 위한 개인적인 시스템을 우선은 설정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행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오만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행운만으로 일이 흘러간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일단 내 나름의 결의와 배짱이 있었습니다. - 149 p


이사크 디네센은 '나는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매일 조금씩 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 151p


그러면 지속력이 몸에 배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 - 기초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 181p


날마다 달리는 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나 자신은 오래도록 뭔가 좀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날마다 달리다 보면 물론 몸은 건강해집니다. 지방은 줄고 균형 잡힌 근육이 붙고 몸무게도 조절됩니다. 그러나 꼭 그것만은 아니다, 라고 나는 늘 느끼고 있습니다. 그 깊은 곳에는 좀 더 중요한 뭔가가 있다, 라고. 하지만 그 '뭔가'가 무엇인지, 나도 확실히 알지 못했었고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습니다. - 186p


너무나 단순한 이론이지만 이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내 몸으로 배운 것입니다. 육체적인 힘과 정신적인 힘은 균형 있게 양립하도록 해야 합니다. 각자 서로를 유효하게 보조해 나가는 태세를 만들어야 합니다. 싸움이 장기전일수록 이 이론은 보다 큰 의미를 갖게 됩니다. - 199-200p